재미있는 자동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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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의 멋쟁이었던 옛날 운전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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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705회 작성일 14-03-1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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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SnSe2.gif  우리나라 최고의 멋쟁이었던 옛날 운전수들


 1926년 서울에 처음으로 택시 미터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택시라는게 없었고, 대절 아니면 전세자동차 뿐이었다. 1920년대 초 서울 장안을 한 바퀴 드라이브하는데 3원,한시간 전세요금은 5원을 받았다. 이 시절 쌀 한 말에 5원할 때였으니 꽤 비싼 요금이었다.

 경제적으로 나라가 몹시 빈곤할 때였고 자동차도 귀했지만 비싼 요금 때문에 서민들이 자동차 한번 타보기란 그림 속의 떡이었다.  이래서 대절 자동차 승객들은 주로 돈 많은 상류층 한량들이나 이들의 여흥을 위한 기생들이 대부분이었다.

 1920년을 넘어서자 자동차는 전국에 8백여대, 서울에만 4백여대로 급속히 늘어났지만 차를 운전할 운전수가 태부족이었다. 이래서 학부출신 관리들이 월급 40원~50원 받을 때 운전수들은 봉급 50원~60원외에 승객들이 주는 팁까지 월평균 수입 100원이상을 거뜬히 올렸다.

 운전수가 되기 위해 자동차 강습소에 입학하려면 수강비가 2개월 코스에 130원이었고,최하 소학교 졸업 이상의 자격을 갖추어야 했으니 이 시절의 운전수들은 대부분 중류층 출신들이었다.또한 자동차 운전수들은 돈을 많이 벌기도 했지만 쓰기도 잘해서 당대의 최고의 멋쟁이로 통했다. 특히 돈 많은 부자들을 모시고 요정에 가면 운전수도 같이 합석하여 밤새껏 즐기는 풍속이 유행하던 때라 물주보다 오히려 후한 팁을 주는 운전수들은 기생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북부의 함경도나 평안도에서는 수입 좋은 총각 운전수나 아편 밀수를 단속하는 총각순사들이 사윗감 후보 1위였을 정도로 대접을 받았다.대절택시는 주로 대도시에 있었지만 지방에는 10인승 승합차가 대부분이었다. 아주까리 기름을 윤나게 발라 넘긴 머리에 중절모 쓰고, 서양양복에 넥타이 날리며 넓은 신작로를 쏜살같이 달리는 멋쟁이 지방 운전수들은 도로연변의 처녀들을 바람나게 만들었다.

 처녀들은 총각운전수들에게 시집가는 것이 평생의 꿈이요, 총각들은 멋쟁이 운전수 한번되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이래서 마산~진주 지방에서는 '낙동강 칠백리에 공굴(콘크리트 다리) 놓고 신작로에는 자동차 먼지바람에 우리집 큰 애기 바람만 나누나'라는 타령조의노래까지 유행했다. 또 운전수들 사이에는 '총각운전수 처녀 세트럭 반이라네' 라는 얘기들도 나돌았다고 한다.

 이렇게 인기 좋은 20년대의 운전사들 이었지만 무절제한 생활 때문에 화류병에 걸려 신세를 망치는가 하면 여배우나 기생에 빠져 재산을 몽땅 탕진하고 패가 망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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